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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깊어가는 가을과 잘 어울리는 나들이 명소를 포착했다. 지독했던 팬데믹과 작별을 고하듯 부풀린 한복 치마와 까만 선글라스 차림의 외국인들이 종로 일대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쏟아지는 자연광, 촉촉한 달빛에 기대어 가장 ‘한국적인 패턴’을 감상할 수 있는 궁궐은 차분한 가을 옷을 입고 한층 위엄을 더했다. 기와를 떠받치는 오방색의 단청은 무한한 영속성을 상징하는 우리 고유의 패턴이다. 반복적이며 서로 연결된 문양들은 신성한 공간임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호이자 길상을 염원하는 장식으로써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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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성을 갖는 패턴(Pattern)은 프랑스어 ‘Patron’에서 유래한 말이다. 본(本), 유형(型, Modèle), 형지(型紙)를 뜻하며, 본능적인 인간의 장식 욕구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미적 욕구를 해소하고자 하는 표현의 방식이면서 식별, 주술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해석된다. 패턴은 되풀이되는 사건 또는 물체들의 집합 요소를 나타내기도 한다. 예측 가능한 동작의 반복인 패턴은 일정한 규칙과 고정된 픽스 값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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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단청, 보도블록, 욕실의 타일은 우리 일상에서 가장 밀접하게 볼 수 있는 패턴이다. 수학용어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은 같은 모양의 조각들을 서로 겹치거나 틈이 생기지 않도록 메꿔 평면과 공간을 덮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정다각형 도형으로만 이루어진 정칙 테셀레이션은 모든 꼭짓점 주변의 정다각형 배열이 동일하다. 어떤 평행이동에 대해서도 주어진 테셀레이션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비주기적 테셀레이션 등 모양에 따라 그 종류는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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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이 정육각형인 이유는 뭘까? 자연에서 테셀레이션의 원리를 적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는 벌집이다. 수학에서 둘레가 일정할 때 넓이가 최대인 도형은 ‘원’이다. 하지만 원을 패턴화하면 어떻게든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평면을 덮을 수 있는, 즉 테셀레이션 할 수 있는 정다각형은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육각형이다. 이중 둘레의 길이가 동일할 때 최대한의 넓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육각형이다. 공동생활을 하는 벌들의 영리함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주어진 자원으로 최대한 안전하고 넓게 생활할 수 있는 정육각형의 집을 짓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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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는 반복적인 루핑(Loofing) 코드를 패턴의 예로 들 수 있다. 떼돈을 벌게 해준다는 머니 코드(Money Chord)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파헬벨의 캐논(Canon)을 재해석한 코드 진행이다. 히트곡을 만드는 마법의 코드는 시대와 장르를 막론하고 자주 쓰인다. 곡 콘셉트에 따라 멜로디 라인, 리듬, 악기 셋을 달리하며 머니 코드는 수많은 명곡들을 쏟아냈다. 같은 코드에서 서로 유사성을 갖는다는 특징 때문에 표절 논란의 반박 증거로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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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소리나 강한 자극은 패턴 방해(Pattern Interruption)를 일으킨다. 반복적인 행동을 방해하는 악수 기법은 ‘천재 의사’라 불린 밀턴 에릭슨의 최면 유도법 중 하나다. 최면가가 내담자와 악수를 하려고 할 때 갑자기 손목을 잡는 등 예측불가능한 행동을 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하는 방법이다. 기대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면 내담자는 비언어적 트랜스를 겪게 된다. 순간적으로 나타난 빈 공간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동기는 무의식과 연결되며, 최면 유도의 과정으로 채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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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을 뜻하는 프랑스어 클리셰(Cliché)는 과거 평범한 인쇄 용어를 의미했지만, 현대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의 진부한 설정, 상투적 줄거리, 전형적인 수법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 역습 당하는 빌런, ‘소중한 사람의 사진을 꺼내 보면 반드시 죽는다’라는 전쟁 영화의 법칙. 남발하면 ‘그저 그런’으로 전락해버리는 고루한 패턴에도 장점은 있다. 장르의 풍자, 희화적인 패러디의 방식으로 이보다 직관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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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know it’s so cliché, but you forget sometimes.

누구나 알지만 때론 잊어버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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